벌써 저기에서 그녀가 날 왜 어이없이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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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싶어서 보내는 행복하지 않은 시간. Daily life


1.

공부를 하러 카페나 혹은 병원의 빈 방에 가면
꼭 딴짓이 끌린다.

요즘의 딴짓 주제는 (공부 주제는 언급하지도 않으면서)
대하소설 강희대제였는데

오늘은 좀 웃을일이 있엇으면 좋겠다 싶어서 밀린 예능을 봤다.

오늘따라 예능들이 참 재미있어서 한참 웃으며 보다가
발칙한 동거에서 또래 셋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직장 회식이나 직장 동료와의 업무의 연장인 술자리 말고
정말 친구들이랑 저렇게 편하게 마신 즐거운 술 자리가 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술 자체가 싫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만족할만한 술 자리 자체가 없었다. 랄까.


2.

혼술을 즐기거나 술 자체를 즐기는건 원래부터 아니었지만
학창시절에는 첫 차가 올때까지 술을 마시고 첫 수업을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이십대 초반이었던 그때는 물론 한두시간만 자면 지금과 달리 생활에 지장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게 너무 즐거웠으니까 다음날 좀 힘들더라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술자리도 업무의 연장인 경우가 많으니까

술이 술을 먹는다, 라는 상황이 되는 경우는 제법 되지만
회식이나 윗년차, 아랫년차들과 마시는 자리는 그렇게까지 마음을 놓지 않으니까

그 상황에서 긴장을 놓고 약간 맛이 간 상태로 웃고 떠들어본지가 언제인지

예능을 보다가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3.

사실 이제는 그렇게 밤새 술을 마실수 있는 친구도 별로 없다.
태반은 결혼을 했고, 태반은 이 지역에 없고.

그리고 그거 아니라도 나같이 일에 치여서
다음날이 무서워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니까

이제와 돌이켜 보면
그때 같이 정신 놓고 취하도록 마셨던 분들 중
더이상은 이 세상에 없는 형도, 동생도 있고
암 투병으로 더 이상 술을 마실수 없는 사람도 있고

또 내가 언제 그렇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인데

즐겁자고 시작한 일이
왜 즐거움을 잃고, 심지어 잊고 지내게 만드는지

착찹한 밤이다.



기억에 남는 환자 (1) Monologue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대부분의 경우에

환자는 자신의 담당 의사를 알지만,

의사는 그 환자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내가 몸 담고 있는 과의 경우는 다르다.

물론 나도 모든 환자를 기억 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나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바깥에서 나를 알아보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내게 굉장히 인상깊었던 친구가 한명 있었다.

교통사고로 양쪽 다리뼈가 거의 으스러지다시피 해서

골 재건부터 피부 이식까지

내가 인턴때부터 3년차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수술과 마취를 받아서 부모님께서도

아이구 별다를거 없으면 그냥 동의 하니까 설명 안하셔도 된다고 하실 정도였다.

 

그 친구가 특별했던 이유는

고등학생이어서도 아니었고

고등학생이면서도 맨날 출퇴근길에 병원 앞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고 있어서도 아니었고

가끔 병원 밖에 도망 나와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발견되어서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그 친구가 지체장애가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매년 마지막 날에는... Daily life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중고등학교때는 새해를 맞이하는 날에는

23시 30분경부터 0시 30분경까지 꼭 한시간은 공부를 했었다.
... 한해의 시작과 끝을 공부하며 보냈다는 허세용이랄까...

뭔가 알찬 마무리와 시작을 하고 싶었던 마음의 발로랄까 ㅎㅎ


대학에 오고 나서는 이상하게 연애 중에도 새해는 항시 혼자 맞았던것 같다.

대개는 그냥 자버렸다. 열시쯤부터.
그냥 별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달까.

가족과 있더라도 0시 카운트다운을 가족과 하진 않고 항상 열한시쯤 되면 들어가서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책도 보고, 영화를 보기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새해를 맞았다.

졸업하고 나서는 항상 근무였다.
요양병원 당직을 서거나
인턴 들어오고 나서는 병원에서 근무를 하거나

그런점에서 작년에 친구와 새해 카운트다운을 세며 맞은건 참 예외적인 일이었지.


올해 연말연시에는 자취방에서 혼자 새해를 맞는다.

외로움을 잘 안타는 나에게는
그리고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던 나에게는
조용히 한해를 되짚어보고 새 한해를 맞는것이
이 시간이 참 좋다

예과 1학년부터 시작된
의대 6년 / 군대 3년 / 인턴 1년 / 레지던트 4년
(그리고 내생애 가장 행복했던 휴학 1년)

이제 마지막 1년이 남았다

지치고 또 지쳐서 더 갈 기운은 없지만
그래도 이제 터널의 끝은 보이는 기분이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쯤엔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겠지

나간 선배들을 보면 터널 끝에 나가도 좋은 세상은 없겠지만
적어도 빛은 들겠지


그러니까 조금만 더 부탁한다.

올해도 수고했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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